아름답게 늙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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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기
  • 오명하 기자
  • 승인 2019.08.3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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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안전뉴스]  칼럼 =

사진=  최병현 칼럼니스트
사진= 최병현 칼럼니스트

시류(時流)에 눈 돌리지 않아 갈대처럼 꿋꿋했던 친구를 불꽃 태워 배웅한 날,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컴퓨터는 재빠르게 기대수명을 산출해 냈지만, 팔팔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건강수명’은 계산해 내지 못했다. 상수(上壽:100세)를 채워도 그 친구처럼 요양병원에서 20년 동안 누워만 지낸다면, 80세를 살다간 사람보다 나을 것도 없다

100세 시대, 죽을 때까지 행복할 수는 없을까? 행복수명이란 경제적인 여유와 건강수명, 인간관계 등을 충족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시간을 말한다. 개인의 경제적 바탕과 건강, 사람과의 관계, 사회활동 등이 행복수명을 산출하는 지표가 된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83.1세이고 행복수명은 74.6세로 8.5년의 차이가 난다.

금전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노년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경제적 바탕이 경제수명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하게 홀로 설 수 있는 경제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건이나 돈에 대한 노탐(老貪)에서 벗어나는 것도 포함된다. 끝없는 탐욕을 억제하지 않는 한, 평생 가난뱅이 늙은 괴물(老醜)일 뿐이다. 세끼의 식사와 검소하지만 비루하지 않게 살 수 있으면, 더는 바람이 없다.

얼마 전, 아픈 가족을 돌보는 간병인 10명 중 3명이 병구완의 어려움 때문에 환자를 죽이거나 같이 죽으려고 생각한 적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특히 병간호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정적인 생각은 심화됐다. 병구완하는 가족 중 상당수가 간병 살인 또는 간병 자살의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이쯤 되면 100세가 ‘장수 만세’가 아니라 ‘장수 말세’인 셈이다. 탁구장에서 만난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인 노친(老親)은 “남겨 줄 것은 하나도 없고, 자녀들에게 짐 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운동하는 것뿐”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어려서부터 헌신과 희생의 삶이었다. 동이 틀 녘부터 들로 나가시는 부모님의 자리를 대신해서 일곱 명의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다. 옥양목 베어 만든 동생들의 교복이 자랑이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야학 당에서 배운 한글이 전부다. 집안 살림 도맡아 하다가 박봉이 서러운 말단 공무원에게 시집을 갔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여섯 식구 건사하다 보니, 그녀의 손톱은 손끝을 벗어나 자란 적이 없다. “사람은 혼자서는 못사는 겨~, 좋은 이웃이 있어야 혀, 나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녀, 이웃사촌도 같이 잘 살아야 혀~,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하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당신의 안락보다 숙명 같은 섬김과 희생, 그리고 베풂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내 누님의 이야기다. 어쩜 사람 간의 좋은 관계란 베풂, 섬김, 헌신, 희생의 단어를 빼놓고는 공허한 메아리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작고한 ‘95세 늙은이의 수기’는 은퇴 후 사람들이 시간을 얼마나 허망하게 보내는지 잘 보여 준다. “나는 열심히 일한 덕에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고, 65세 때 당당히 은퇴했습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만일 내가 퇴직을 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엘레나 루스벨트는 "아름다운 젊음은 우연한 자연 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 작품"이라고 말하였다. 무심한 세월 따라 늙기는 쉬워도 아름답게 늙기는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세울 것 하나도 없이 모진 세월을 견뎌왔지만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며 살아왔으니 보잘것없지만 좋다. 문득 추사의‘세한도(歲寒圖)’가 생각난다. 가지 한 개와 몇 개의 이파리가 전부인 늙은 소나무가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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